"박복한 민족이고 천추의 한이다." 잡담




  2000년 10월 23일, 미국 첫 여성 국무장관이었던 매들린 올브라이트 장관이 평양을 방문했다. 올브라이트 장관의 방문 목적은 클린턴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을 추진하기 위한 사전 작업 차원이었다. 소위 운전자론을 주장하여 클린턴 대통령을 설득하고,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어 낸 김대중 대통령의 오랜 노력이 만든 결실이었다. 역사를 크게 바꿀 뻔 했던 '김대중-클린턴 그랜드 플랜'이 추진되는 중이었다.

  클린턴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여 첫 북미정상회담을 마친 후 북-미 수교를 맺어 북한의 체제안전을 미국이 보장한다. 미국이 북한의 체제를 인정하고 정치적 후견자가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미국의 오래된 친구, 북한은 미국의 새로운 친구'로 맺어진다. 
  그러면 곧바로 이어서 북한과 일본이 정상회담을 성사하여 수교하고, 일본은 북한이 요구하고 있는 일제배상금 110억 달러를 지원한다. 자연스럽게 경제원조의 일부를 일본이 부담한다. 체제 보장과 수교가 끝난 북한은 핵 불능화와 남북불가침 선언에 합의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남북철도 연결을 비롯한 본격적인 교류와 협력이 이루어진다. 이것이 '그랜드 플랜'의 핵심 내용이다.

  그러나,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연방대법원 판결까지 가는 끝에 조지 W. 부시가 새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클린턴 대통령의 계획을 이어나갈 민주당 앨 고어 후보가 낙선한 것이다. 그리고 부시 대통령은 ABC(Anithing but Clinton) 기조 하에 클린턴 행정부의 기존 대북정책을 중단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당연히 클린턴의 평양 방문은 좌절되고 김대중-클린턴 계획도 물거품이 되었다.

  퇴임 이후인 2007년에 김대중 대통령이 이때를 회고하며 한 말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참으로 박복한 민족이고 천추의 한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이후 다시 미국 주간지 <타임(TIME)>과 인터뷰를 가졌다. 기사를 읽으며 나는 과거 김대중-클린턴 계획을 떠올렸다. 문 대통령의 답변 중 하나다. "저도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평화는 매우 깨지기 쉬운 평화입니다. 언제든지 흔들릴 수 있습니다."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중도 결렬(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스캔들을 덮기 위해서라는 말까지 나온)도 우리에게는 2000년 미국 대선에 비견할 만한 사건이다. 그 이후 많은 노력이 있었지만 부침이 컸고, 코로나-19 팬데믹까지 겹치며 전 세계가 방역에만 매달릴 수 밖에 없었다. 이제는 문 대통령의 남은 임기도 많지 않다. 

  <타임> 또한 이 문장으로 기사를 마무리한다. '만약 문 대통령이 이 일을 해내지 못한다면 아마 어느 누구도 이루지 못 할 것이라는 암울한 깨달음이 그의 진정한 유산이 될 지 모른다(That might, after all, be Moon’s true legacy—the grim realization that if he couldn’t fix things, perhaps nobody can.).' 

  하지만 2017년 문 대통령의 취임 초, 실제로 한반도에 무력 충돌 가능성이 진지하게 제기되었을 때를 돌아보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짐작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은 힘써 방향을 바꾸려 했고, 결국 성공했다. 같은 시대와 공간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나는 대통령에게 빚을 졌다.

(문재인 정부의 주요 정책은 - 신남방정책, 신북방정책, 미사일 지침 해제와 독침전략, 해/공군 비중 강화로 상징되는 국방정책, 해운산업 부활, 다자외교, 북-중-러에서 북한과 러시아를 연횡책으로 느슨하게 만들면서도 중국과 적절히 밀당하며 친선 관계 복구 및 유지 - 모두 중국의 팽창을 억제하는 목적이나 영향력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북한을 더 끌어들인다면 가장 큰 효과이자 이익이다.)

  이제 언론과 야당의 광기는 대선과 겹치며 더 심각할 것이다. 그럼에도 해야 할 일이고, 문 대통령은 변함없이 막중한 사명감을 갖고 있다. 앞으로는 어느 누구도 이 어려운 일을 시도하는 것조차 두려워할지도 모른다. 나는 이런 두려움이 더 두렵다. 2000년 미국 대선에 이어 하노이 북미정상회담도 '천추의 한'이 되지 않도록, 대통령께서 뜻하는 '구 냉전의 종식'을 임기 중에 반드시 이루었으면 한다.

  문 대통령의 <타임> 인터뷰 기사 제목이다.






덧글

  • 과객b 2021/06/27 19:41 # 삭제 답글

    김대중이가 대통령을 해 먹은 것이 박복한 일이지
    정말 일이 안될려고 하려면야 뭔 일인들 되겠냐만
  • 無碍子 2021/06/28 21:03 # 답글

    악마와도 협상을 할것인가?
    https://brunch.co.kr/@robintoto/13
    종이쪼가리에 도장하나 쾅 찍으면 북한의 핵폭탄이 사라지고 휴전선에 평화가오는 마법은 없어요.

    문재인대통령도 북한다녀와서는 김정은이가 핵폭탄을 폐기할 의지가 있다고 했어요. 근데 그 의지를 보여준적도 실행한적도 없어요.

    김정일이는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수령님의 유훈입니다'라면서 핵폭탄을 만든놈입니다. 그걸 잊지마세요.

    체임벌린이 종이쪼가리한장 들고와 히틀러는 전쟁하지않는다고 평화라고 개소리한거 기억하세요.

    평화는 강자의 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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