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거래 이후 - Since the Zidane deal 축구 글

Since sale of the Century - 레알 마드리드와 유벤투스의 운명을 바꾼 초대형 거래와 그 후의 기록





  1900년대가 끝나고 뉴 밀레니엄이 다가오던 무렵의 유럽 클럽축구는 유벤투스가 지배했다. 힘과 기술을 절묘하게 조화한 비안코네리는 닥치는 대로 우승했고, 그렇지 못하면 준우승이라도 챙겼다. 추앙받는 대부 지아니 아리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눈빛에 탁월한 테크닉과 발레리나의 우아함까지 지닌 세계적 아이콘 지네딘 지단을 가리켜 유베의 '심장'이라고 했다. 하지만 2001년 7월 유벤투스는 자신의 심장을 4,700만 파운드(7500만 또는 7800만 유로)라는 기록적인 액수로 레알 마드리드에 매각했다. 유벤투스의 21번이 토리노를 떠나자 많은 이탈리아인들이 동요했다. 전성기를 누리던 슈퍼스타의 이동과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스페인의 약진은, 축구계의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세기의 거래를 둘러싸고(위에서부터) : 루치아노 모지 유벤투스 단장, 플로렌티노 페레스 레알 마드리드 회장, 아넬리 유벤투스 회장


모든 것은 로테르담으로부터

  유벤투스에서 미셸 플라티니의 빈자리를 채웠던 지단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었다. 에드가 다비즈, 알레시오 타키나르디, 디디에 데샹 같은 보병들이 지단의 천재적 플레이가 시연될 공간을 만들기 위해 몸바쳐 뛰었다. 비안코네리 명부에 기록되어 있는 동안 그는 월드컵과 앙리 들로네, 발롱도르를 안았다. 체면이 구겨진 이탈리아 언론은 애꿎은 지단의 부인 베로니크를 트집 잡았다. 
  이야기의 출발점은 지단이 유로 우승 메달을 목에 걸고 샴페인 축배를 들었던 로테르담이다. 1998년 월드컵에서 세계 챔피언에 올랐던 프랑스가 유로 2000까지 우승하며 유럽을 정복했을 때, 지단도 대표팀의 일원으로 뛰었다. 하지만 유벤투스의 분위기는 베로니크 지단으로 인해 싸늘하게 식었다. 어머니와 할머니가 모두 스페인 사람인 베로니크가, 토리노에 대해 '넓기만 한 우울한 도시로, 밤에 놀 곳도 그럴싸한 상점도 없는 데다 겨울에는 끔찍한 안개로 뒤덮이는 곳'이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마르세유에서 나고 자란 지단은 지중해 지역의 라이프스타일을 선호한다. 프랑스, 포르투갈 클럽은 다른 유럽지역과 비교해 가난하기 때문에 스페인이 적당한 선택이었다. 스페인을 택한 것이 지단 일가의 선호도 문제였다면, 정착할 도시는 경제 논리에 의해 바르셀로나 또는 마드리드 중에서 선택해야 했다. 세련된 분위기의 바르셀로나는 밤늦게까지 외식을 즐기기에도 좋고, 지중해의 정서를 지닌 도시다. 하지만 클럽은 루이스 피구를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로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어수선했다.
  한편 레알 마드리드는 챔피언스리그에서 막 우승을 거둔 뒤였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의 팬들은 생동감 넘치는 공격 축구의 부활을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야심만만한 플로렌티노 페레스가 압도적인 표차로 회장에 당선되어 한 시즌을 보낸 뒤였다. 페레스 회장은 약속한 대로 캠페인을 성공적으로 완수했고, 당시로서는 최고 기록인 3,800만 파운드를 주고 라이벌 클럽에게서 루이스 피구를 영입했다.

  유벤투스는 지단이 앞으로의 거취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보낼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2000년에 페레스와 루치아노 모지 유벤투스 단장이 만났을 때, 현금과 브라질 출신 미드필더 플라비우 콘세이상을 제의했다는 소문이 나돌았지만 그 후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유벤투스는 조바심이 났고, 아넬리 회장이 직접 지단을 만나 팀에 남아달라고 개인적으로 부탁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선수 이적을 총괄하던 모지 단장은 2000-01시즌 내내 지단을 얼마에 매각할지, 그를 대체할 선수로 누구를 선택할 지를 고민했다.




레알 마드리드 최다 출장 선수 마누엘 산치스(위), 디 스테파노에게서 5번 유니폼을 받는 지단(아래)


각자의 길

  유벤투스에서 한때 입에 담을 수도 없었던 지단의 이적은 점점 기정사실화되었다. 이전에도 로베르토 바지오, 지안루카 비알리, 크리스티안 비에리와 같은 대형 스타를 팔아본 경험이 있던 모지 단장은 지단에게 값어치가 남아있을 때 파는 것이 최상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유벤투스의 비토리오 키우사노 회장은 '지단을 매각하지 않는다면 경영상에 어려움이 클 것이다. 장부에는 감정이란 없다.'면서 작별을 공식화했다.

  2001년 7월 9일, 역사상 최고의 거래가 공표됐다. 협상은 겨우 72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고, 레알 마드리드의 연습장에 모인 취재진 앞에서 마드리드의 아이콘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가 지단에게 유니폼을 건넸다. 프랑스 말을 하는 새로운 스타에게 통역을 구해줄 생각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9세나 된 선수에게 그토록 많은 돈을 지불한 속내가 궁금하던 사람들은 지단이 새로 받은 등번호를 보고는 웃었다. 그 번호는 1983년 레알 마드리드에 데뷔하여 무려 712경기나 출전하며 클럽 최다 출전 기록을 세운 마놀로 산치스의 5번이었다. 지단은 '산치스만큼 출전할 것 같지는 않다'며 농담을 했다.

  페레스 회장은 "세계 최고의 팀은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갖고 있어야 한다. 레알 마드리드의 범우주성은 지네딘 지단의 범우주성과 완벽하게 일치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큰 실수를 했다고 생각한다며 덧붙였다. "그들(유벤투스)은 금세기 최대의 거래를 성사했다고 생각하며 그 돈으로 팀을 보강하려고 한다. 제정신이 아니다. 그들은 중요한 부분을 놓쳤다. 실력있는 선수를 내쫓고 무엇을 얻을 수 있나? 지주 같은 선수는 절대 내보내서는 안 된다."




일격 : 네드베드와 부폰은 2003년 챔피언스리그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탈락시켰다.


지단 이후의 토리노

  1년의 시간을 확보한 유벤투스는 지단을 보내며 얻은 돈을 현명하게 재투자했다. 먼저 지단이 떠나기 직전 마르첼로 리피를 다시 감독으로 데려왔고, 라치오의 미드필더 파벨 네드베드를 영입해 지단의 공백을 다른 방식으로 메우려 했다. 체코 출신의 안짱다리 미드필더를 영입하는 데는 3,000만 파운드가 들었다. 네드베드는 지주만큼의 기교와 지능은 없었지만, 뛰어난 지구력과 유벤투스의 전설이 되고 싶다는 열의가 있었다. 그리고 그는 2003년 챔피언스리그 준결승(2차전 토리노)에서 마드리드의 수비를 고문하며 통쾌한 골을 만들어냈다. 또한 팀의 노쇠한 수비에 새 바람을 불어넣기 위해 파르마의 수비를 맡고 있던 릴리앙 튀랑과 지안루이지 부폰을 데려왔다, 이 중 부폰은 파란을 일으킨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에서 지단의 프리킥(1차전)과 피구의 페널티(2차전)를 막는 등 혁혁한 활약을 펼쳤다.

  유벤투스는 지단이 떠난 뒤에 잠시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를 극복하며 첫 시즌에 스쿠데토를 차지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유럽 무대(챔피언스리그)에서는 쉽지 않았다. AC 밀란에게 승부차기로 패한 2003년 결승 외에는 실망스러운 패배만을 겪은 마르첼로 리피는 월드컵을 위해 이탈리아 대표팀으로 떠났다. 리피의 후임으로 온 파비오 카펠로는 기존 선수진과 새로 합류한 파비오 칸나바로를 중심으로 팀을 꾸려 국내 무대를 계속 지배했지만, 유럽에서는 두 번 모두 녹아웃 토너먼트에서 패하며 탈락했다.
  그러던 중에 칼치오폴리가 터졌다. 유벤투스는 세리에A 우승 2회를 박탈당하고 세리에B로 강등당했다. 주축 선수들은 물론 카펠로마저 떠나자, 지단의 옛 동료 디디에 데샹이 감독으로 부임해 팀을 한 시즌 만에 세리에A로 승격시킨 후 사임했다. 클럽은 라니에리 감독과 함께 챔피언스리그에 복귀했지만, 팀 성적은 점차 하락하며 감독들의 경질이 이어졌다. 비안코네리의 부진은 지단 시절의 팀 주장이던 콩테가 부임하며 해결되었다. 하지만 두 번의 스쿠데토를 차지한 리그와 달리 유럽에서는 아직도 예전의 힘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흥분과 좌절(위에서부터) : 2002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나온 지단의 발리슛,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하는 지단, 하이버리에서의 패배


스페인 생활의 아픔과 영광

  조용하고 숫기없는 지단은 볼만 열심히 찼지만 시작은 순탄하지 않았다. 떠들썩한 스페인 언론은 지단의 적응을 오히려 방해하고 있었다. 지단은 수페르코파(스페인 슈퍼컵)를 따내는데 기여했지만 리그가 시작된 초반까지는 좋은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하지만 이적하고 두 달이 지난 9월부터 지단은 4경기 연속으로 골을 넣으며 부진을 떨쳐내기 시작했다. 왼쪽 측면을 완벽하게 장악한 호베르투 카를로스와 궂은 일을 도맡아가며 지칠 줄 모르고 뛰는 클로드 마켈렐레는 지단의 새로운 보병들이 되었고, 지단은 새로운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문제는 결과였다. 지난 시즌 리그 우승을 차지한 마드리드의 고질적인 수비 불안은 쉽게 해결되지 않았고, 결과에 대한 언론의 비난은 종종 역대 최고의 이적료를 기록한 지단에게 이어졌다. 
  이러한 비난은 레알 마드리드가 리그에서 다시 순위를 끌어올리면서 자연히 사라졌고, 지단은 다시 본래의 모습대로 말없이 자신의 재능을 보여주었다. 로스 블랑코스는 2001-02시즌 발렌시아에게 리그 우승 트로피를 내주었지만, 유럽에서는 지난 시즌 자신들을 탈락시킨 바이에른 뮌헨과 라이벌 바르셀로나를 꺾으며 승승장구했다. 1960년 역사적인 5연속 우승을 달성한 경기장인 글래스고의 햄든 파크를 다시 찾은 레알 마드리드의 상대는 강자들을 딛고 올라온 바이에르 레버쿠젠이었다. 생각보다 팽팽하게 진행된 결승전의 전반이 끝날 무렵, 왼쪽 측면에서 질주하던 카를로스가 살짝 튄 볼을 그대로 걷어 올려 부정확한 크로스를 보냈다. 이때 박스 가장자리에 있던 지단은 떨어지고 있는 볼을 그대로 때리는 예술적 경지의 발리슛으로 골을 넣었고, 클럽에 9번째 유러피언컵을 안기며 기술과 균형을 겸비한 자신의 진가를 입증했다.



영광 : 42년 만에 같은 장소에서 클럽에 9번째 유러피언컵을 선사한 지주


  레알 마드리드는 새로운 시즌을 시작하며 슈퍼컵을, 그 해 12월에는 새로 합류한 호나우두의 득점으로 인터콘티넨탈컵도 차지했다. 그리고 이듬해 봄에는 돌풍을 일으킨 소시에다드를 제치고 29번째 라리가 우승을 추가했다. 지단은 절대자였다. 최근 선수들을 웬만해서 칭찬하지 않는 디 스테파노조차 지단을 '마에스트로'라고 불렀다.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에서 유벤투스에게 패한 것이 옥의 티였지만, 지단의 플레이는 패배로 인한 비판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다.
  2002-03시즌이 끝나고 몇 시간 만에 비센테 델 보스케 감독과 주장 페르난도 이에로가 챔피언스리그 부진(?)의 희생양으로 짐을 꾸렸다. 레알 마드리드는 페레스에 의해 경기에서 이기는 팀보다는 유니폼을 파는 팀으로 서서히 변해갔다. 지단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마켈렐레가 팀을 떠났고, 이후 데이비드 베컴이 마드리드에 도착했다. 베컴은 전성기를 달리고 있는 선수였지만 마드리드에 반드시 필요한 선수인지는 논란이 있었다.

  2003-04시즌 갈락티코스는 코파 델 레이 결승에서 레알 사라고사에게 무릎을 꿇었고, 얼마 후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모나코에게 패해 8강에서 탈락했다. 1차전 베르나베우에서는 4-2로 이겼지만, 2차전 루이 2세 경기장에서 1-3으로 패해 원정골에서 밀리며 '라 데시마(10번째 우승컵)'의 꿈을 접었다. 레알 마드리드 입장에서는 모나코에게 탈락한 것도 치욕이었지만, 더욱 뼈아픈 일은 마드리드에서 모나코로 임대된 페르난도 모리엔테스가 8강에서 두 골을 넣으며 마드리드의 패배에 큰 영향을 준 것이었다. 모리엔테스는 페레스와 그 측근들에게서 갈락티코스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판정을 받고 주전에서 밀려났지만, 모나코에서 자신의 실력이 여전함을 드러냈다. 
  3월까지만 해도 모든 대회에서 우승하겠다는 욕심을 경기로 보여주던 갈락티코스였지만 갑작스러운 패배는 치명적이었다. 마드리드는 3월까지 리가에서 승점 8점 차이로 1위를 달렸고,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16강)에서 맞수인 바이에른 뮌헨을 만났을 때 마드리드의 이사진들은 '선발명단에 서포터를 포함시켜도 이길 수 있다'며 농담을 할 정도였다. 하지만 4월 이후 마드리드에는 승리라는 말이 사라졌고, 결국 리가에서도 1위를 내주고 말았다. 지단 또한 자신의 절정에서 내려오기 시작하며 황금기는 급격하게 꺾였다.



"지단, 우리를 구해주세요"


  그 후 두 시즌 동안 갈락티코스는 그들에게 걸맞지 않은 지지부진한 행보를 이어가며, 수많은 비판과 루머의 표적이 되었다. 마드리드에 대한 비판과 루머는 마치 미국에 대한 그것과 비슷할 정도였다. 이전까지 비판의 대상으로 거의 거론되지 않던 지단도, 이전만큼 강인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자 전성기가 지났다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가는 거장에게 예전처럼 필드를 전력질주해 2, 3명을 제치며 상대를 박살내고, 이렇게 한 시즌 동안 50경기를 뛰는 건 부담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탁월한 센스와 기술, 시야를 보여주는 지단에게 많은 것을 의지하던 마드리드는 지단이 출전하지 않거나 일찍 교체되면 답답한 모습을 보이는 경기가 많아졌다. 특히 유럽에서는 이런 현상이 더 심하여, 마드리드는 레버쿠젠과 리옹 원정에서 맥없이 무너지기도 했다. 흥미진진한 축구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패배와 우승컵을 놓치는 것은 – 특히 유러피언컵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 레알 마드리드라는 클럽에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2006년 2월 회장인 페레스가 사임했다. 한편 시즌 중에 자신의 은퇴를 발표한 지단은, 2006년 5월 7일에 베르나베우에서 홈 팬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마드리드 선수로 뛴 마지막 경기는 세비야 원정이었다). 비야레알과의 라리가 경기에서 골을 넣은 지단은 3-3 무승부를 끝으로 눈물을 흘리며 경기장을 떠났고, 그의 화려한 재능과 기술에 환호하던 관중들은 아쉬움과 감동을 담은 박수로 답했다.





작별 : 2006년 선수로서 베르나베우 마지막 경기를 마치며 마드리드 팬들에게 인사하는 지주


지단을 배웅하는 마드리스타들



  스페인 축구팬들에게 지단은 특별한 존재였고, 마드리스타에게는 우상이었다. 클럽의 가장 영광스러운 시절인 디 스테파노 시대와 유러피언컵을 끝내 차지하지 못한 라 퀸타 시대를 겪은 완고한 마드리드 팬들마저도 지단에게는 절대적인 지지와 찬사를 보냈다. 'Morbo'의 저자이자 스페인 축구 전문가인 필 볼은 "지단이 다른 유니폼을 입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유벤투스의 흑백 유니폼은 선수에게 집중하는 것을 방해했다. 마드리드의 단순한 유니폼은 그의 재능을 돋보이게 했고, 그의 깔끔하고 단순한 경기 접근 방식과도 어울렸다."고 말했다. 
  모두가 이렇게 찬란한 기억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마드리드에서 스트라이커와 감독, 단장을 역임한 호르헤 발다노는 "지단은 예술가다. 그에게는 큰 무대가 필요하고, 베르나베우는 완벽한 무대였다. 그는 베컴, 피구, 라울처럼 승리를 최우선으로 두는 선수가 아니다"라며 그의 경기하는 자세를 지적했다. 하지만 발다노는 또 이렇게 말했다. 
  "지단은 축구 역사의 혼합물과도 같은 존재이다. 그가 구사하는 축구 스타일은 남미와 유럽 축구가 결합되어 있다. 마치 스포츠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빨아들인 것처럼 보인다. 축구는 점점 혼돈 속으로 빠지고 있는 형태를 보이고 있지만 경기장에서 그가 내리는 결정은 축적된 지식의 산물이며 이것은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 선수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는 지단이 조화를 대표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글자 그대로 모든 전형을 뒤엎은 불세출의 이방인이다. 그에게 필적할 만한 선수들은 있겠지만 그를 능가할 수 있는 선수는 아무도 없다."

  은퇴 이후 축구계를 잠시 떠나 자선활동을 이어가던 지단은 2009년 레알 마드리드의 기술 고문으로 돌아왔다. 단장을 거쳐 코치로서 안첼로티를 도우며 새로운 경험을 쌓는 중인 지단은, 종종 자선 경기에 참여해 자신의 기술과 재능을 보여주곤 한다. 지금도 지단은 부인 베로니크와 함께 마드리드에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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