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컵의 참을 수 없는 매력 축구 글

슈퍼컵 - 한 네덜란드 기자의 꿈에서 탄생한 유럽 축구의 개막 축포 by Sheridan Bird, Ulrich Hesse, Paul Simpson



슈퍼컵 트로피 : 승리한 챔피언의 상징


  UEFA 슈퍼컵(유러피언 슈퍼컵)은 국제적 축구 대회로서는 드물게도 프랑스 사람들의 소산물이 아니었다. 유럽 클럽의 궁극적인 최강자를 가린다는 슈퍼컵의 아이디어는 네덜란드 신문 <데 텔레그라프>의 기자였던 안톤 비트캄프의 제안에서 탄생되었다.
1970년대 초반 유러피언컵을 정복하고 있던(세계를 정복했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이다) 아약스의 활약에 감동한 비트캄프는 "아약스와 요한 크루이프를 기념하고 싶었으며, 토털 풋볼의 시대를 상징하는 대회"가 필요하다고 말하며, 유러피언 챔피언스컵(이하 유러피언컵) 우승팀과 유러피언 컵위너스컵(이하 컵위너스컵) 우승팀이 맞붙는 대결을 제안했다. 비트캄프는 "부와 명성보다 더 값진 '최강'의 자리에 오르기 위한 한 판이었다. 유럽 최고의 팀은 어디일까? 유러피언컵 챔피언? 원칙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그 팀이 최강이 되어야만 했다. 하지만, 축구에도 상대성 이론은 존재한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축구가 미완의 예술로 승화될 수 있는 이유다"라고 말하며 이 대회가 아약스의 영광을 더욱 화려하게 장식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위대한 업적 : 아약스와 요한 크루이프는 토털 풋볼뿐만 아니라 슈퍼컵으로도 남았다.


  <데 텔레그라프>가 개최에 필요한 재정적 지원을 맡았고 아약스는 1971-72 컵위너스컵 우승팀인 레인저스를 상대하게 되었다. 비트캄프의 바람은 적중했다. 당시 '슈퍼 유러피언컵'으로 명명된 그 대회에서 아약스는 레인저스를 합산 결과 6-3(아약스 기준 1차전 3-1 승, 2차전 3-2 승)으로 눌렀다. 당시 아약스를 이끌고 있던 스테판 코바치 감독은 진지한 태도로 경기에 임했다고 주장했지만, 선수들에게 '부상을 피하려면 볼을 빨리 돌려라'라는 지시를 내려 승리에 먹칠을 하기도 했다.
  이 대회는 1973년 UEFA의 공식 승인을 받았다. 비트캄프는 아약스가 산 시로에서 AC 밀란에게 0-1로 패한 뒤, 2차전에서 로쏘네리를 6-0으로 대파하며 UEFA 슈퍼컵의 공식 초대 챔피언으로 등극하는 모습에 환호했을 것이다. 믿음직한 태도와 실력으로 '폴크스바겐'이라 불리던 AC 밀란의 독일 수비수 칼-하인츠 슈넬링거는 "우리가 이렇게 참패한 적은 정말 처음이었다."라고 말할 정도로 충격에 휩싸였다. 얄궂게도 대다수의 평론가들은 로쏘네리가 실점을 한 자릿수로 유지할 수 있던 것은 골키퍼인 빌리암 베커 덕분이라고 하며 그를 밀란 최고의 수훈갑으로 선정했다. 비록 크루이프가 바르셀로나로 떠난 직후였지만, 여전히 매혹적인 아약스의 플레이는 새롭게 탄생한 트로피의 권위를 세우기에 충분했다.



놀라운 승리 : 철의 장막을 넘어 승리를 따낸 디나모 키예프


독일의 끔찍한 기억

  아약스의 시대가 저물자 바이에른 뮌헨이 유러피언컵을 세 번 연속으로 차지하며 자신들의 시대를 열고, 발레리 로바노프스키 감독의 디나모 키예프와 맞붙게 되었다. 하지만 철의 장막으로 인해 서유럽 국가에게 생소한 존재인 디나모 키예프가, 유럽과 세계를 정복한 프란츠 베켄바워, 게르트 뮐러, 울리 회네스, 제프 마이어가 있는 팀을 난관에 빠트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뮌헨에서 열린 1차전에서 디나모 키예프는 주전이 넷이나 결장했지만 단련된 팀워크와 세련된 기술로 그 공백을 메웠다. 로바노프스키의 팀은 바이에른의 압박을 흡수해버리며 상대의 틈새를 공략했고, 훗날 위대한 선수가 된 올레흐 블로힌은 그 경기에서 유일한 골을 터트렸다.
  한 달 후, 키예프에서 열린 2차전에서 디나모 키예프는 자신들의 승리가 우연이 아님을 다시 증명했다. 1차전의 주인공 블로힌이 바이에른 진영의 박스 안으로 질주해 들어가 골대 반대편을 노린 완벽한 슈팅을 포함해 2골을 넣으며 2-0 승리를 이끌어낸 것이다. 골에 환호하는 선수들에게 자기 포지션으로 돌아가라는 지시를 내린 로바노프스키 감독조차 골이 들어간 순간에는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려 기뻐하며 포커페이스로 유명한 자신의 모습을 잠시 잊을 정도였다. 독일의 천재 미드필더인 귄터 네처는 "디나모 키예프는 소련 축구가 상상력이 부족한데다 기계적이라는 관념을 뒤집어 버렸다. 경기 템포를 서서히 조절하다가 갑자기 역습을 전개했다"며 혀를 내눌렀다.




맞대결 : 무자비함을 감추고 있는 봅 페이즐리(위)와 줄담배를 피워대는 '콜롬보' 레이몽드 괴탈스(아래)


  1975년 슈퍼컵은 분데스리가 팀들에게 악몽같은 선례를 남겼다. 슈퍼컵에 참여한 독일의 일곱 팀 가운데 바이에른이 첫 주자였지만 패하고 말았다. 그 다음은 1977년 함부르크가 리버풀과 맞붙었는데, 당시 안필드를 떠나 함부르크로 이적한 지 몇 달 밖에 지나지 않았던 케빈 키건은 오랜 동료들과의 재회를 결코 잊지 못했을 것이다.
  리그에서 부진하던 봅 페이즐리의 리버풀은 11월 폴크스파르크 슈타디온으로 원정을 떠나 1-1로 경기를 끝내며 사기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안필드에서 열린 2차전에서 리버풀은 6-0으로 함부르크를 박살내버렸다. 중원을 책임지던 이안 캘러한이 감기로 결장하자 테리 맥더모트가 대체자로 출전했는데, 그는 17분 사이에 해트트릭을 달성했다. 경기 후 엄청난 충격을 받은 키건은 "리버풀이 요즘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내가 보기에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인다. 우리는 너무나도 빠르게 무너졌다"고 말했다. 함부르크의 주장이었던 피터 노글리는 "끔찍한 기분이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라는 소감을 남겼다. 결과에 크게 고무된 리버풀은 다시 한 번 기세를 끌어올려 유러피언컵을 다시 차지하기 위한 여행을 떠났다.

  1년 후, 봅 페이즐리와 레이몽드 괴탈스는 처음으로 슈퍼컵을 두 번 들어올리는 감독이 될 수 있는 영광스러운 기록을 놓고 팽팽하게 맞섰다. 페이즐리는 필승카드로 굳건한 미드필더 그래엄 수네스와 민첩하고 웅장한 공격수 케니 달글리시를 내세웠지만 효과적이지 못했다. 괴탈스는 이타적이며 클래식한 왼쪽 윙어 롭 렌센브링크와 수비형 미드필더 프랑키 판 데르 엘스트로 승부를 걸었다. 브뤼셀에서 먼저 3-1 승리를 거둔 안더레흐트는 마지막 유럽 무대를 가진 엠린 휴즈(리버풀은 유러피언컵에서 브라이언 클러프의 노팅엄에게 패하며 이미 탈락했다)가 득점을 올린 리버풀에게 1-2로 패했지만, 합산 결과 4-3으로 승리하며 2년 만에 슈퍼컵을 되찾아오는 동시에 최초의 2회 우승을 이루었다.




예측불허 : 유러피언컵 챔피언 함부르크를 꺾고 슈퍼컵까지 차지한 애버딘과 알렉스 퍼거슨


카테나치오보다 칼치오가 장악한 시대

  1980년대 초반까지 유러피언컵 결승전에서는 이진법 숫자처럼 1-0 승부가 잇따랐지만, 슈퍼컵은 그렇지 않았다. 1986년, 세비야에서 기적을 만든 슈테아우아 부쿠레슈티는 다시 한 번 위업을 달성했다. 로바노프스키의 디나모 키예프에게 결승에서 첫 패배를 안겨준 것이다.
  1990년대 중반에는 아약스와 유벤투스가 슈퍼컵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먼저 루이스 판 할이 이끄는 어린 아약스는 암스테르담에서 레알 사라고사를 4-0으로 대파하며 맹렬한 기세를 떨쳤다(합산 5-1). 1996년 슈퍼컵은 연도와 맞지 않게 해를 넘겨 열렸는데, 유벤투스가 1월의 눈이 소복이 쌓인 파르크 데 프랭스에서 파리 생제르망을 물리쳤다. 마르첼로 리피의 집요한 비얀코네리는 디디에 데샹,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그리고 위대한 선수로 나아가던 지네딘 지단의 활약에 힘입어 1차전에서 6-1, 2차전에서는 3-1로 승리하며 합산 결과 9-2라는 경이적인 스코어로 우승을 장식했다.



모나코에서 거둔 승리 : 1999년 컵위너스컵 최후의 우승팀 라치오


모나코, 밀란, 그리고 무리뉴

  1998년, 단판 승부제로 바뀐 슈퍼컵은 개최 경기장도 모나코의 루이 2세 스타디움으로 옮기며 점차 유럽 축구의 새로운 시즌을 알리는 개막전 성격을 띠게 되었다. 슈퍼컵에서는 첼시와 레알 마드리드가 맞붙었고, 첼시의 거스 포옛이 골을 넣으며 1-0으로 승리했다. 1년 후, 알렉스 퍼거슨 경이 이끄는 트레블의 주인공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최후의 컵위너스컵 우승팀인 스벤-고란 에릭손의 라치오에게 1-0으로 패하고 말았다. 퍼거슨 경은 그 경기에서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의 시야에 큰 인상을 받고 2년 후 그를 영입하기에 이른다.
  컵위너스컵이 폐지된 후, 슈퍼컵은 UEFA컵 우승팀과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의 맞대결로 변모했다. 2003년, 무리뉴가 이끄는 UEFA컵 우승팀 포르투는 AC 밀란을 맞상대했지만, 후이 코스타의 환상적인 돌파와 크로스를 머리로 받아넣은 안드리 셰브첸코의 골에 패하고 말았다. 무리뉴는 패배에 대해 완고한 견해를 피력했다. "우리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다소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만약 밀란이 최고라면 우리도 최고이기 때문이니까."



의외의 성과 : 2002년 레알 마드리드는 클럽 창단 100년 만에 처음이자 유일한 슈퍼컵을 차지했다.


  2003년 슈퍼컵이 전율적인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의 등장을 알리는 대회였다면, 2006년 슈퍼컵은 프랑크 레이카르트가 이끄는 정복자 바르셀로나가 굴복한 무대였다. 승리에 굶주린 후안데 라모스의 세비야는 호나우지뉴, 데코, 사무엘 에투, 리오넬 메시 등 주전이 모두 출전한 카탈루냐 클럽을 철저하게 박살내며 3-0으로 승리했다.
  바야흐로 슈퍼컵은 단순한 개막식이 아닌 사육제로서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다. 루이 2세 스타디움은 아담하고 독창적이며 매력적인 구장이다. 거의 모든 위치에서 지중해가 바라다 보이고, 새로운 시즌을 고대하는 팬들을 열광적인 응원을 펼친다. 게다가 누가 경기장에 등장할 지 아무도 짐작할 수 없다. 2008년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우승 당시에는 아름다운 여성들이 환호를 보냈고, 2007년에는 벤치를 향해 가던 파올로 말디니가 옛날 영화스타의 아우라를 뿜으며 팬들에게 사인을 하는 광경도 펼쳐졌다. 하지만 줄은 계속 늘어만 갔고, 벤치에 도착하고 나서야 말디니는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고귀한 파트타임 왼쪽 풀백인 알베르 공도 변함없이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아마도 지역 특선요리의 이름을 딴 자신의 자선 단체인 바르바주안스를 위해 몇 가지 요령을 배울 생각이었던 듯 싶다. 슈퍼컵의 환상적인 현장 분위기를 TV에서 모두 느낄 수는 없지만, 이를 감안해도 슈퍼컵만큼 멋진 분위기의 대회도 없다.



환상적인 분위기 : 바닷가를 바라보고 있는 루이 2세 스타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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