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퍼와 리베로여, 영원하라 축구 글



스위퍼의 업 그리고 다운 : 포백 뒤의 자유로운 수비수는 이제 없다. 아니면 그가 그저 자신의 포지션을 드디어 찾은 것일까?


  축구계 몇몇 단어들 중에는 굳이 해석이 필요하지 않아도 그 의미를 전세계 축구인들이 공유할 수 있는 단어들이 있다. 리베로(Libero, 자유인)는 그중의 하나다. 그러나 이제 리베로는 축구 역사에나 등장하게 될지도 모르는 멸종 위기에 놓여있다. - 비록 이 '자유인' 들이 축구계에 영감을 불어넣었지만 말이다. 스위퍼 시스템을 발전시키고 또 유용하게 이용했던 이탈리아에서조차도 스위퍼와 리베로 모두가 과거의 유물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1990년 스쿠데토를 따냈던 나폴리의 리베로를 맡았던 지안카를로 코라디니는 이렇게 말한다.
  "이탈리아는 유행의 국가입니다. 그리고 현재 유행은 존 디펜스죠. 20년 전 모든 팀은 리베로 또는 전문 스토퍼를 두는 수비를 가동했지만 현재 그런 전술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여겨지고 있어요. 이제 다시는 이탈리아에서조차 정통 리베로를 볼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리베로는 전술의 진화와 함께 사장된 포지션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일지도 모른다. 1982년 월드컵을 들었던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카브리니는 "그 포지션이 다시금 부활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럴 만한 이유가 없거든요." 라 말했다.
  이탈리아 축구에 있어 리베로의 출생과 사망은 유러피언컵과 밀접한 관련을 지녔다. "초창기 이탈리아 팀들은 유러피언컵에서 우승을 이루기가 굉장히 힘들었어요." 유지니오 파체티의 말이다. 그는 현대 세리에 A 무대에서 마지막으로 리베로를 가동한 감독이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2000년 바리에서 감독일을 하던 8년 전의 일이다. "리베로를 둔다는 것은 수비적으로 상대에게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서죠. 그런데 어느 날 인테르, 그 다음에 밀란, 그 이후에 유벤투스도 유러피언컵을 드는 광경을 목격했죠. 그리고는 사키의 밀란이 다른 승리 공식을 들고 나타났는데, 이후 모두가 따라했어요."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리베로를 사용하는 데에 있어 그 장단점에 대한 토론이 이뤄지곤 했다. 그러나 현재 이 주제에 대한 토론은 거의 없다. 리베로는 멸종된 포지션이며 포지션의 언급은 오래된 추억에 잠기는 느낌만을 그 애호가들에게 줄 뿐이다.




창세기 : 프란츠 베켄바워(위)와 아르만도 피치(아래)는 이 포지션을 완벽하게 만든 선수들이었다.


이탈리아 스타일, 리베로

  원래 리베로는 수비적인 제약이 없는 수비수로써 축구계에 등장했다. 그 말을 풀이하자면 어떤 뚜렷한 상대만을 막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축구계 최초의 리베로는 인테르의 아르만도 피치였으며 그는 엘레니오 에레라 감독이 이끌던 '위대한 인테르' 카테나치오의 핵이었다. 피치 또한 대부분의 위대한 리베로들처럼 처음부터 중앙 수비수로 축구를 시작하지 않았다. 그는 본래 오른쪽 풀백이었다.

  과거 로마를 지도했던 카를로 마쪼네는 "전 피치와 함께 경기를 해봤죠. 그는 상대 공격의 예봉을 항상 꺾어놨어요. 수비적이면서 파괴적인 역할이었죠. 하지만 몇 년이 지나지 않아 감독들은 그 포지션의 선수로 하여금 공격의 시발점을 맡게 만들었죠. 모든 작업이 리베로로부터 시작되었어요." 리베로의 중요성이 점차 커지자 리베로라는 말은 세계 축구계 전체로 퍼지게 되었다. 그 어떤 포지션도 리베로처럼 급속도로 진화하지는 않았다. "원래 정통 리베로는 수비 뒤에 머물렀으며 경기 내내 볼을 소유하는 시간이 2분이 채 되지 않았어요. 그러나 그들은 이내 경기에 참여하기 시작했으며 미드필드의 균형을 잡아가기까지 했죠." 과거 토리노에서 선수 경력 막바지에 리베로를 봤던 공격형 미드필더 출신 레나토 자카렐리의 말이다. 그는 1986-87시즌에 최우수 리베로 상을 받았다.



진화한 리베로 :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중반을 주름잡은 가에타노 시레아


  자카렐리의 과거 팀동료인 카브리니는 "베켄바워를 제외하면 우리 팀 리베로들이 최고였죠. 원래 리베로들은 극도로 수비 지향적이었지만 그들은 모두 진화하기 시작했고 결국 경기를 조절하는 선수들이 되었죠. 가에타노 시레아가 그 첫번째 진화를 거친 선수였는데, 그는 항상 볼이 있는 곳에서 경기했어요."
  시레아는 유벤투스 소속으로 리그 통산 24골을 기록하며 수비수로는 많은 골을 넣었고(그리고 그는 이탈리아 축구 선수 최초로 자신의 이름을 딴 길이 만들어지는 영예를 누렸다.), 반면 인테르의 피치는 인테르에서 통산 2골만을 넣었다. 유벤투스에서 대부분의 선수생활을 했던 시레아의 시대에 있어서 리베로는 우아한 포지션으로, 수비진의 10번이자 경기 설계도를 머릿속에 넣은 선수들이 위치했다. 좋은 리베로라고 불리려면 강한 성격, 본능, 경험, 기술적 완성도, 집중력과 리더십과 같은 성질이 모두 갖춰져 있어야만 했다. 그들에겐 무지막지한 힘은 필요하지 않았다. 몇몇 리베로들은 키가 180cm조차 되지 않았다. 자카렐리는 또 이렇게 말했다. "베켄바워와 시레아 모두 미드필더 출신이었죠. 그들은 새로운 리베로의 전형을 만들었어요. 볼을 가지고 전진하거나 필드 전방위에 걸쳐 플레이를 진행했죠. 그들이야말로 우리의 본보기였어요."



아리고 사키 : 그는 창조자면서 동시에 파괴자였는가?


과연 아리고 사키가 스위퍼를 멸종시켰을까?

  많은 사람들이 이탈리아 스위퍼의 멸종을 아리고 사키 감독의 탓으로 돌린다. 그가 이끈 완벽한 밀란은 압박을 가하는 시점을 높게 잡았고 존 디펜스와 함께 정통적인 리베로를 수비 포백 안에 넣는 전술을 시작했다. 이는 세리에 A 수비전술에 있어 새로운 장을 여는 시도였으며 그 중심에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바로 프랑코 바레시였다.
  자카렐리는 바레시를 두고 "리베로와 스위퍼에 있어 최종진화형" 이라고 평했다. "바레시는 우리가 훗날 센트랄레 스타카토 - 포백에 위치하되 동떨어진 플레이를 펼치는 중앙 수비수 - 라고 부르게 되었죠. 우리는 당시 선수생활의 막바지였고 그는 신인이었지만, 그럼에도 그가 축구에 있어 한 획을 그을거라 자명해보였어요."

  바레시는 당시 "사키 감독님은 우리 수비진의 목표가 공격 작업 보조 또는 공격 작업을 하라고 지시했어요. 사람을 잡지 말고 또 공간을 점유하라고 했죠. 그 비결이 뭐나고요? 항상 자기 위치를 머릿속에서 알고 있어야 했으며 - 볼과 멀리 떨어진 곳에 있어도 항상 경기에 참여할 것을 원했죠." 바레시의 가속력은 대단했지만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한 그의 엄청난 장기는 바로 그의 급감속 능력이었다. 라치오, 파르마, 우디네세에서 리베로를 봤던 네스토 센시니는 "바레시는 전속력으로 달리다가도 한 순간에 정지하곤 했죠." 라 말했다. 그는 또 덧붙였다.
  "한번은 그 친구가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서 상대 팀을 오프사이드에 20번이나 빠뜨렸죠. 바레시야말로 오프사이드 트랩의 창시자일지도 몰라요. 그는 수비라인 뒤쪽에 있다가 일순간 빠져나가면서 상대 선수를 오프사이드에 빠뜨렸어요. 그는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는 정통 리베로였지만 밀란에서는 현대적인 리베로였어요. 결국 정통파 리베로는 멸종되었죠. 바레시가 바레시를 넘어선 거에요."



바레시의 바레시 밀어내기 : 바레시의 재능은 너무나도 뛰어나서 리베로 포지션을 아예 포백에 포함시켜 버렸다. 그리고 그 포지션은 사장되었다.


  이후 스벤 예란 에릭손, 즈데넥 제만, 파비오 카펠로 감독의 등장과 함께 이탈리아는 닐스 리드홀름과 아리고 사키 감독이 시작했던 존 디펜스를 사용하는 나라가 되었다. 1987년에는 세리에 A의 16개 팀이 리베로를 사용했지만, 1997년에는 단 7팀이었고 2007년에는 리베로를 사용하는 팀은 사라졌다. 파체티 감독의 말이다. "리베로는 너무나도 진화했기 때문에 거의 스텔스 상태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이 보는 모든 작업에 있어 - 아니면 봐야만 마땅한 작업에 있어 - 리베로의 역할은 누군가가 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 포지션이 숨겨져 있어서 멸종한 것과도 같죠."

  다른 포지션을 맡다가 리베로를 본 코라디니는 축구 규칙의 발전과 더불어 리베로가 사장되었다고 전한다. "한 명의 고정된 리베로를 쓰다보면 자신의 팀에 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직접적인 타격의 파울을 했다간 바로 퇴장당하는게 현대 축구이며, 20년 전에는 선상에 걸친 오프사이드에도 반칙이 불어졌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죠. 수비 라인 5미터 뒤에 있는 리베로는 총 350제곱 미터의 공간을 상대편에게 주는 겁니다."
  카브리니 또한 이에 동의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전했다. "리베로는 스토퍼와 연계하여 상대 공격수를 막았습니다. 그러나 존 디펜스에서는 모두가 상대방을 막죠. 때로는 서너명이 한 명을 막을 때가 있어요. 이럴 때 리베로만 뒤에 있다면 한 명이 부족하겠죠."

  현대 축구에서도 리베로의 흔적이 종종 보이지만 수비진에 위치하지는 않는다. 카를로 마쪼네 감독은 "축구에는 유행이 있습니다. 현재는 과거에 3선으로 구분되는 포지션 사이에 낀 선수들이 있어요. 과거에 4-4-2라고 불리던 포지션의 변형으로 현대 축구는 4-1-1-1-3-0이 있죠. 로마를 보세요. 거기서 수비 앞선의 1에 위치한 선수야말로 현대의 리베로입니다. 로마에서는 다니엘레 데 로시가 리베로에요. 그는 리베로와 같은 움직임을 취하지만 수비수들보다 앞선에 있으며 도움이 필요할 때는 뒤로 물러나죠. 하지만 그는 볼을 항상 만지고 있으며 배급을 맡아요."



카를로 마쪼네 감독 : "피를로에게 앞으로 리베로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면 그 친구는 겁에 질려 도망갔을 겁니다."


마쪼네 감독 덕분에 피를로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팀의 수비와 공격을 맡고 있다.


  1994년 월드컵에서는 브라질의 마우로 실바가 현대 리베로가 무엇인지 전 세계를 상대로 강의를 했으며 그는 팀의 센터 위치를 넘나들며 윙백들인 조르지뉴와 브랑코가 측면 공격을 맡을 수 있게 도왔다. 파체티는 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리베로에게 있어 일대일 상황은 피해야 합니다. 만약 상대방이 원톱 전술을 사용한다면 피해갈 길이 없겠죠. 센터백 둘 중 하나는 그에게 꼭 달라 붙어야합니다. 그리고 또 한명이 뒤에서 커버를 들어가고요. 하지만 상대방이 두 명의 공격수를 사용한다면 한 센터백은 전담 마크에서 무조건 자유로워야 해요. 그때는 한 명의 풀백이 상대편 투톱중 한 명을 잡아야 합니다. 존 디펜스에서 이 일을 하려면 힘들어요. 차라리 데 로시와 같은 선수들이 후방으로 내려와서 한 명의 스트라이커를 잡고 센터백 둘이 또 한 명의 스트라이커를 맡는게 좋죠."
  그리고 그는 안드레아 피를로가 알레산드로 네스타에 비해 더욱 좋은 리베로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피를로의 변신에 있어 큰 역할을 했던 마쪼네 감독 또한 이에 동의한다.
  "저는 당시 브레시아 감독이었고 피를로는 당시 자신이 메짜푼타(공격형 미드필더)라고 생각했어요. 그에게는 엄청난 시야가 있었기 때문에 저는 그에게 수비라인 바로 위에서 플레이를 하라고 지시했죠. 하지만 피를로가 제게 '저는 골넣는 것을 좋아해요' 라고 해서 제가 반문했어요. '그래도 일년에 4~5골 아니냐. 내가 말한 위치에서 뛰면 골수가 배는 될거다. 딱 2주만 해보자. 넌 앞으로 미드필드 후방의 플레이메이커다.' 그 이후 저는 그에게 의심하지 말고 경기하라고 했어요. 시간이 지나고 그는 제게 '여기서 경기하니까 정말로 편해요. 항상 볼을 만질 수 있어요.' 라고 말했죠. 그는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했고 만약 제가 그에게 수비라인 위의 리베로가 되라고 했다면 그는 겁에 질린 채 도망갔을 겁니다. 미드필드 후방의 플레이메이커라고 말을 했으니 그가 받아들였죠."



마티아스 잠머 : 어쩌면 최후의 정통 리베로였던 천재


마법의 지우개를 만들자

  현대 축구의 수비 전술 대세는 존 디펜스다. 그러나 10년 동안 리베로를 두지 않는 과정을 거치다 보니 한 가지 문제점이 대두되었다. 파체티는 한가지 문제가 특히나 걸린다고 전했다.
  "몇 년 동안 한가지 방식으로만 경기를 하다보니 많은 수의 이탈리아 출신 수비수들이 그들의 장점을 잃고 있어요. 바로 대인 마크하는 방법을 잊는 겁니다. 모든 팀에서 그것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종종 두 선수가 서로에게 '네가 맡아야지!' 라면서 소리를 지르죠. 한 명의 스트라이커가 네 명의 수비진을 곤란하게 만드는 겁니다. 리베로가 있다면 이런 일은 없을 거에요."

  마쪼네 또한 동의한다. "존 디펜스의 남용은 센터백들이 정작 대인 마크를 하지 않는 폐해를 불러왔어요. 칸나바로를 봐요. 마테라치가 월드컵에서 호주를 상대로 할 때 퇴장당했잖아요. 그때 칸나바로는 임시 리베로로 기용되었고 그 친구는 대단했죠. 칸나바로와 같은 수비수들은 흔치 않아요." 리베로 시스템은 당시 어린 선수들로 하여금 대인 마크를 배우게 만들었다. 현재 아이들은 공간을 막도록 지도받고 있다. - 그 과정에서 수비라는 예술에서 몇몇 기술이 없어졌다. 코라디니의 말이다.
  "너무 어린 나이 때부터 존 디펜스를 가르치고 있어요. 저는 유소년 축구 아카데미에서 과거의 리베로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봐요. 14세, 15세 선수들이 리베로 시스템을 배우면 더욱 지능적인 선수가 되죠. 저는 그래서 제가 지도하는 포백 모두의 선수를 훈련 중 20분 동안 꼭 리베로와 스토퍼 포지션을 보도록 시킵니다. 리베로 포지션을 서는 선수들을 보고 있자니 예전 흑백 영화를 보는 기분이죠. 예전 영화들이 마치 카메라를 한시도 내버려두지 않은 것처럼 항상 볼을 따라다니죠. 리베로 시스템을 사용하면 축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고 선수로 하여금 피치 모든 구역을 가게 만들어요. 축구 두뇌를 깨우는 것이죠."

  이에 자카렐리 또한 동의한다. "저는 과거 정통 리베로가 부활할지는 모르겠지만, 현대 축구에는 분명히 무언가가 부족해요. 우리는 리베로가 축구계에 선사하는 예측력과 임기응변을 잃었어요. - 게다가 90분 내내 상대 선수를 '지워버리는' 대인 마크 전문가들도 잃었어요. 학교에서 과거에는 서법을 배웠지만 이제 학생들은 컴퓨터에서 바로 출력하죠. 수비 또한 마찬가지에요. 새로운 기술들이 도입되면 과거의 장인정신 같은 것이 사라진다고나 할까요? 유소년 선수들을 지도하면 이와 같은게 눈에 보여요. 아이들에게 상황을 설정해주고 하라고 하면 잘하지만, 실제 시합에서는 그것을 잘 못해요. 영화가 아니라 사진을 보는 기분이죠."

  그렇다면 과거의 스위퍼/리베로는 죽었을까? 파체티는 용기가 대단한 감독만이 그 부활을 이끌 것이라고 했다. "현대 축구 골수분자들은 리베로가 죽었다고들 하죠. 제가 만약 아직까지 감독을 했더라면 피치에 2명의 리베로를 뒀을 겁니다. 피치 구석구석을 모두 자유롭게 다니라고 하면서요. 그리고 그 일은 정말로 가능해요."



프란츠 베켄바워가 다시 젊어진다면 현대의 감독들 또한 과거의 리베로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을까? 이탈리아의 선수들조차 베켄바워의 독보적인 능력을 따르지는 못했다.



덧글

  • 와우 2012/10/12 13:50 # 삭제 답글

    좋은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리베로 스위퍼에 대해 잘 몰랐는데 덕분에 잘 알아갑니다 ^^
  • 즐라쭈리 2019/06/28 04:31 # 삭제 답글

    언젠가 스위퍼에 관한 글을 적어보려 했는데 여기 충분한 글이 있네요. 여러 레전드들의 코멘트까지.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 농부 2019/06/29 02:21 #

    도움이 되었다면 제가 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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